본문 바로가기

미스쓰리랑

조항조 나이 고향 학력 '남자라는 이유로'

가수 조항조 '남자라는 이유로' IMF 때 대 히트

가수 조항조가 '남자라는 이유로'가 히트할 줄 몰랐다고 밝혔습니다.

 

조항조는 "내 인생에 대한 고마움을 노래했다. 한 번쯤은 남은 나의 생애를 돔 더 보람 있고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살아가자라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는 노래다"라고 말했습니다.

복잡한 시국 노래로 희망을 선사하고자 한 조하조는 그것만으로도 팬들에겐 큰 위로와 기쁨이 될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더 특별한 건 트로트의 홍수 속에 감미로운 발라드 장르를 선택, 가뭄 속 반가운 단비처럼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조항조는 "사실 오랜동안 밴드 생활을 해서 팝 위주로 노래를 많이 불렀다. 트로트를 계속하면서도 사실 제가 트로트 테크닉이나 가창이 좀 부족한 게 많다. 트로트는 너무 어렵다."

 

"그래서 약간 발라드나 스탠더드 한 곡을 트로트와 시켜서 부르는 게 조항조표가 아닐까 싶어서 발라드를 조항조화시켜서 부르기 시작했다."

 

"'남자라는 이유'로가 트로트인데 약간 발라트 스타일로 불렀다. 그 외에 나머직 곡들도 다 그런 식으로 부르게 됐다"라고 밝혔습니다.

 

'남자라는 이유로'는 1990년대 후반 IMF라는 시대상과 맞물려 힘겨운 시기를 보내던 중년 남성들에게 감동을 선사, 뜨거운 인기를 얻었습니다.

 



조항조는 "히트곡은 제가 만들어내는 게 아니고 대중들이 만들어주는 거다. 좋은 노래를 불러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래서 '남자라는 이유로' 곡을 받았을 때 트로트가 이렇게 좋은 가사가 있는 곡이라면 한 번 해볼 만하지 않을까 싶어서 부르게 됐다." 

 

"사실 히트를 예감하고 부른 노래는 아니다. 곡을 받았을 때 의미 있는 곡을 하고 싶었다. 이 정도의 트로트는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불렀다"라고 말했습니다.

 

'남자라는 이유로'는 조항조가 처음으로 부른 곡이 아니다?

1978년 최진희의 곡 '미워도 미워 말아요' 원곡이고, 1994년 가사를 새로 써서 박우철이 '남자라 이유로' 발표하고 1997년 조항조가 이 곡을 리메이크하였습니다.

 

이 곡은 나훈아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이 곡을 작곡한 임종수는 원래 이 곡을 나훈아의 '무시로'에 쓰려고 나훈아에게 주었으나 나훈아는 이 곡을 쓰지 않고 자신이 직접 작곡해서 쓰게 되었고, 이후 설운도 최진희를 거쳐 박우철의 손에 들어가 지금과 같은 가사가 붙어서 불리게 됐습니다.

 

그런데 '남자라는 이유로'는 조항조가 가장 세련되게 불렀고, IMF사태의 영향인지 대 히트를 기록합니다.

 

 

 

'왕가네 식구들' OST로 대박

익숙지 않던 트로트였지만 정성을 다해 진심으로 노래를 부른 조항조는 트로트로 소위 연이은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그중 으뜸은 바로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  OST  '사랑찾아 인생찾아'입니다.

조항조는 "OST는 드라마하고 이입이 잘 돼야 된다. 드라마가 어떤 형태로든 노래가 흡입이 잘 돼야 대중들한테 큰 사랑을 받는다. 그래서 장단점은 있지만 어떻게 보면 운이라고 봐야 될 거 같다." 

 

 

"드라마가 잘 되면 같이 잘 될 수도 있고 드라마는 잘 안 됐는데 곡이 또 잘 될 수도 있고 예상하지 못하는 거다. 제일 행복했던 순간은 제 노래를 많은 분들이 불러주고 사랑해주는 그 반응이 왔을 때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사실 드라마 내용도 모르고 불렀다. 그 당시 OST는 거의 발라드 부르는 가수들 소유물이었다. 성인 트로트 부르는 가수들이 부르는 예는 드물었다. 그래서 정말 사랑받을 거라 생각도 못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조항조 그룹사운드 보컬로 데뷔, 미국 이민과 귀국

조항조가 1970년대 그룹사운드(이름: 서기 1999년)로 데뷔한 그. 당시 인기가 어마어마했답고합니다.

 

조항조는 "인기가 진짜 많았다. 특히 업소 공연을 가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면 다리를 잡아서 발을 빼면 신발이 벗겨진다. 그러면 신발을 가져가는 분들도 있고 재밌는 에피소드가 꽤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던 중 운명처럼 찾아온 선택의 순간. 미국 이민을 원하는 가족을 위해 한국에서의 활동을 접고 그는 떠날 결심을 했습니다.

 

그렇게 갑자기 시작된 미국 생활. 터전이 달라졌다 해도 노래에 대한 열정을 져버릴 수 없던 그는 낯선 땅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조항조는 "보이지 않는 미래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서 한 거고 가족 다음으로 미쳐 있었다. 그런데 이걸 포기하고 가기는 그렇고 또 가족을 위해서는 가야 되고 그래서 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미국에 갔다."

 

 

"현지에서 제가 본토 노래를 부른다는 건 잘 안 맞았다. 근데 교포들이 가요를 좋아하셔서 그때 가요를 하면서 정말 가요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됐다. 가요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제가 바뀌게 됐다"라고 말했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통해 깨닫게 된 우리 가요의 매력. 그렇게 그는 다시 한번 중대한 결심을 하며 귀국을 택했습니다.

 

조항조는 "3년 만에 돌아왔을 때 제 자리가 없었다. 다시 만들어야 됐다. 밴드를 해야 될지 솔로를 해야 될지 많이 혼란스러웠다. 일단 가요를 부르겠다고 나왔으니까 어떤 곡이든 사랑받을 수 있는 곡들 그리고 의미 있는 곡을 하고 싶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조항조의 아내

조항조의 아내는 그가 긴 무명 생활을 하는 동안 곁을 지켜 준 사람으로 재미교포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에 사는 이모의 심부름 덕에 지금의 부인과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조항조는 와이프와 결혼 전 '무명 가수'라는 직업 때문에 집안의 반대가 많았습니다.

 

또한 무명가수 생활을 청산하고 아내의 가족들이 있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고, 가수 조항조의 국내 활동 복귀도 아내의 결정으로 인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항조는 "아내는 그걸 막으면 '남편의 꿈을 부셔버리는 것 같다'고 하더라. 짧은 시간 동안 같이 못 있어서 힘들겠지만, 당신이 원하는 것 성취하고 (오라고 했다)"고 한국에서 가수 활동을 다시 시작할 당시 부인의 반응이었습니다.

 

프로필

본명: 홍원표
나이: 1959년 10월 16일
고향: 서울시
데뷔: 1976년

학력: 광운대학교 (기계공학과 / 학사)
가족: 배우자 홍숙재, 남동생 홍준표, 슬하 1남

소속사: 우리엔터테인먼트

인스타그램: johangjo98 

 

앨범

서기1999년 1집 "나 정말 그대를 (1978년) "못잊어" (1978년)
서기1999년 2집 "외출" (1979년) "사랑의 그림자" (1979년)
서기1999년 3집 "포구" (1981년) "어쩌다 한번" (1981년)
0집 "허무한 사랑" (1989년), "한 번만 더"(1991년) - 첫 솔로앨범은 유현상이 설립했던 백두산기획에서, 두 번째 앨범은 MUSIC POINT에서 발매됐다. 공통점은 유현상의 친형 유진(유진상)이 프로듀싱했다는 것. 오랫동안 이민을 갔던 조항조에게 친구 유현상이 음반 한 번 내자 제안해서 귀국했다가 앨범을 내고 노래가 어느 정도 히트하던 시점 재정 문제로 소속사 지원이 끊겨 한동안 좌절했었다 한다. #
1집 "남자라는 이유로" (1997년)
2집 "조항조 #2 (Shall we Dance)" (2000년) - 공동 타이틀곡인 '사나이 눈물'이 인기를 끌었다.
3집 "Emotion (남자반 여자반)" (2004년)
4집 "The Beautiful Soul, The Fourth Story" (2005년) - '만약에'가 히트했고, 후속곡인 '거짓말'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5집 "2010 Johangjo Emotion 2" (2010년) - 타이틀곡 '가지마'
6집 기다림 part1 타이틀 '때' (2016년)

 

 

수상경력

2020.12.27. KBS 1TV 《전국노래자랑》 가수편, 대상
2020년 제1회 트롯어워즈 트롯 100년 남자 베스트 가수상
2014년 MBC 가요베스트 대제전 대상 수상
2014년 제22회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가수 대상
2012년 제18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10대 가수상
2012년 KBS 올해의 가수상
2011년 KBS 올해의 가수상
2010년 KBS 올해의 가수상
2010년 제16회 대한민국 ㆍ연예예술상 연예발전공로 우정상
2009년 KBS 올해의 가수상
2007년 제14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성인가요가수상
2006년 제13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성인가요가수상
2005년 제12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연예봉사상 수상
2005년 국무총리 표창
2003년 SBS 가요대전 트로트 부문상
2003년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성인부문